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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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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오야마 고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200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여 2020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006년 데뷔하여 2007년 첫 완봉승을 기록했고, 2012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월간 MVP를 수상했다. 2019년에는 통산 6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20년 은퇴 후에는 라쿠텐 구단에서 코치,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24년부터 1군 투수 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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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고지 - [인물]에 관한 문서
선수 정보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 아오야마 고지 (요코하마 스타디움, 2012년 3월 18일)
아오야마 고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포지션투수 / 코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81
출생일1983년 8월 12일
출생지홋카이도 하코다테시
타석
투구
데뷔 리그NPB
데뷔일2006년 3월 25일
데뷔 팀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최종일2020년 9월 29일
최종 팀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최종 리그NPB
통계 (2020 시즌)
리그NPB
승-패 기록42-58
평균 자책점3.67
탈삼진713
세이브45
홀드159
선수 경력
코치 경력
수상 경력
기타 정보
신장180
체중80
드래프트2005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3라운드
이전 소속홋카이도 하코다테 공업 고등학교
하치노헤 대학
연봉9,000만 엔 (2016년)
감독/코치 경력

2. 프로 입단 전

아오야마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주로 외야수를 맡았고, 홋카이도 하코다테 공업고등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향했다. 고등학교 3학년 봄의 전도 대회 결승에서 홋카이 고등학교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여름에는 미나미 홋카이도 대회에서 베스트 4에 진출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에이스는 대학 선배이기도 한 이시카와 켄이었다.

아오모리현의 하치노헤 대학(현 하치노헤 가쿠인 대학)에 진학하여 경식 야구부에서는 대학 통산 20승 무패, 베스트 나인 3회의 성적을 거두었다. 2005년 대학 선수권 준준결승에서 소카대의 야기 토모야와 9회를 던졌지만 동점인 채로 강우 콜드가 되었고, 재경기에서도 선발 완투했지만 연장 10회 끝에 끝내기 패했다. 가을의 메이지 신궁 야구 대회 대표 결정전에서는 도호쿠 복지 대학과의 경기에서 나중에 팀 동료가 되는 마츠자키 신고와 투구 대결을 벌여 연장 10회 끝에 6-5로 패했다.

2005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등번호는 '''41'''이다.

2. 1. 유소년 시절

아오야마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주로 외야수를 맡았고, 홋카이도 하코다테 공업고등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향했다. 고등학교 3학년 봄의 전도 대회 결승에서 홋카이 고등학교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여름에는 미나미 홋카이도 대회에서 베스트 4에 진출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에이스는 대학 선배이기도 한 이시카와 켄이었다.

아오모리현의 하치노헤 대학(현 하치노헤 가쿠인 대학)에 진학하여 경식 야구부에서는 대학 통산 20승 무패, 베스트 나인 3회의 성적을 거두었다. 2005년 대학 선수권 준준결승에서 소카대의 야기 토모야와 9회를 던졌지만 동점인 채로 강우 콜드가 되었고, 재경기에서도 선발 완투했지만 연장 10회 끝에 끝내기 패했다. 가을의 메이지 신궁 야구 대회 대표 결정전에서는 도호쿠 복지 대학과의 경기에서 나중에 팀 동료가 되는 마츠자키 신고와 투구 대결을 벌여 연장 10회 끝에 6-5로 패했다.

2005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등번호는 '''41'''이다.

2. 2. 고등학교 시절

아오야마는 홋카이도 하코다테 공업고등학교 시절부터 투수로 전향했다. 고교 3학년 때 여름에 열린 남홋카이도 대회에서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고교 1학년 당시 에이스는 대학 선배이기도 한 이시카와 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봄의 전도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홋카이 고등학교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2. 3. 대학교 시절

하치노헤 대학(현 하치노헤 가쿠인 대학)에 진학하여 대학 통산 20승 무패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2005년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 대표 결정전에서는 에이스이자 동기로 입단했었던 마쓰자키 신고(당시 도호쿠 복지대학의 좌완 에이스)와 투수전을 펼쳐, 연장 10회말에 도호쿠 복지대학이 승리했다. 경식 야구부에서는 베스트 나인 3회의 성적을 거두었다.

2005년 대학 선수권에서는 준준결승에서 소카대의 야기 토모야와 9회를 던졌지만 동점인 채로 강우 콜드가 되었고, 재경기에서도 선발 완투했지만 연장 10회 끝에 끝내기 패했다. 가을의 메이지 신궁 야구 대회 대표 결정전에서는 도호쿠 복지 대학과의 경기에서 나중에 팀 동료가 되는 마츠자키 신고와 투구 대결을 벌여 연장 10회 끝에 6-5로 패했다.

2005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등번호는 '''41'''이다.

3. 프로 선수 경력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2005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아오야마를 3순위로 지명했다.[1]

2006년 3월 25일, 아오야마는 NPB 데뷔전을 치렀다. 신인으로서 시즌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하여 주로 중간 계투로서 활약했고 선발 투수가 빨리 강판된 경기에서는 롱릴리프도 맡았다. 교류전이 종료된 시점에서 팀내 1위가 되는 34경기에 등판했고 5월 3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점수가 리드된 상황에서 8회말 2아웃 상황에 등판해 4개의 공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9회에 라쿠텐이 역전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후에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8월 상순에 2군으로 떨어졌고 9월 하순에는 다시 1군에 합류하는 등 최종전에서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11월 1일, 센다이 시내의 병원에서 추계 캠프 연습 도중에 부상당했던 오른쪽 무릎 (반월판 손상) 수술을 받았다.

2007년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개막 2번째 경기인 세이부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1실점으로 막아 선발 첫 승리를 거두었다. 5월 7일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 일본 대표 1차 후보로 선출(최종 멤버에는 들지 못함)되었고, 5월 13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첫 완투, 첫 완봉,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9경기에서 1승 7패의 성적으로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7월 하순에는 2군으로 강등되었고, 9월 하순에 다시 1군에 합류했다.

2008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어, 3월 30일 닛폰햄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에 고야마 신이치로가 마무리로 기용되자, 중간 계투와 땜빵 선발을 모두 소화하는 스윙맨 역할을 담당했다.

2009년 부상으로 시즌 준비가 늦어졌고, 라쿠텐 구단 사상 처음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10월 3일 세이부전(K스타 미야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3개의 홈런을 맞았지만 9이닝 5실점으로 2년 만에 완투 승리를 거두었다[3]。또한 이 해 7월에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인 여성과 결혼했다.

2010년 3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왼쪽 옆구리 통증을 일으켜 2구 만에 강판되었다.[4] 선발 투수가 2구 만에 강판된 것은 구단의 최단 기록이다(선두 타자인 니시오카 츠요시와의 대결이 볼 1 스트라이크에서 완료되기 전에 강판되었기 때문에, 상대 타자 수는 0명). 복귀 후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어 셋업맨으로 정착, 가타야마 히로시, 고야마 신이치로와 함께 승리 공식 "쓰리 마운틴스[5]"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해에는 41경기에 등판하여, 개인 최다인 5승, 팀 최다 타이인 15홀드 포인트, 평균자책점 1.72의 성적을 남겼다.

2011년 개막 초에는 선발로, 개막 카드에서도 선발 등판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남기지 못한 채 중간 계투로 다시 돌아왔다. 2군 강등을 경험하는 등 작년 시즌 정도의 안정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51경기에 등판하여 3승 4패 2세이브, 팀내 1위인 26홀드 포인트와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2012년 1월 5일에 하코다테 시내 병원에서 첫째 아들(장남)이 태어났다.[6]。캠프에서는 다렐 라즈너로부터 수호신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고[7], 5월부터는 라즈너의 부상으로 인해 마무리 투수로 정착했다. 9일부터 15일까지 6경기 연속 세이브의 일본 타이기록을 달성, 첫 월간 MVP로도 선정되었다. 올스타전에도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했다. 그대로 시즌을 통해 마무리 투수를 맡아 팀 최다인 61경기에 등판. 2006년에 후쿠모리 카즈오가 기록한 21세이브를 넘어선 22세이브를 기록하며 구단 기록을 갱신했다[8]

2012년 3월 18일 요코하마 스타디움


2013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지만, 5월 후반부터 다렐 라즈너와 역할이 바뀌어 중간 계투로 기용되게 되었다. 이후 6월 12일부터 8월 3일까지 16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셋업맨으로 부활했다. 이 해에도 60경기에 등판하여, 2년 연속 60경기 등판과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 출전을 달성했다.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경기에서는, 함께 불펜을 지지하며 부상으로 안타깝게 중도 이탈한 라즈너의 유니폼을 입고 맥주를 뿌리는 행사에 참가했다.[9] 일본 시리즈에서는 부상으로 벤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프의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이 1억 엔이 되었다.

2014년 캠프에서는 수호신 경쟁에 참가했지만, 개막 1군에 들어가지 못했다. 승격 후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지만, 5월에 2군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셋업맨으로 후쿠야마 히로유키가 두각을 나타낸 점도 있어, 재승격한 6월 28일에는 본인 3년 만에 선발 등판을 경험하여 6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8월에 다시 2군으로 강등되었고, 최종 등판 수는 프로 데뷔 후 최소가 되었으며, 2007년 이후 세이브 수 0으로 마감했다.

2015년 수호신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클로저는 고졸 2년차인 마쓰이 유키로 고정되었다. 셋업맨으로 개막을 맞이했다. 개인 최다 타이인 61경기에 등판했고, WHIP도 처음으로 1을 넘지 않는 등 리그 2위 타이인 35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에 후쿠야마 히로유키가 기록한 27HP를 넘어 구단 신기록이 되었다. 또한, 6월 28일에는 통산 400경기 등판, 9월 14일에는 통산 100홀드를 각각 기록했고, 해외 FA권도 취득했다. 5살 위의 코야마 신이치로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함에 따라, 토종 투수 중에서는 최고령자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센다이 시내 병원에서 둘째 딸이 태어났다[10]

2016년 도쿄 돔


2016년, 주로 8회 셋업맨을 맡았다. 개막 3번째 경기인 3월 2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연장 10회에 등판하여 2/3이닝 5실점으로 무너져 패전 투수가 되었다. 다른 중간 계투 투수도 불안정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접전에서 기용되었지만, 6월 15,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2경기 연속으로 구원에 실패했다. 전반기는 5패, 방어율 6.39의 성적으로 전반기가 끝나면서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팜에서는 8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고, 8월 19일에 재승격되었다. 9월에는 등판한 13경기 모두 무실점으로 막는 등, 15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오프에 해외 FA권은 행사하지 않고, 라쿠텐에 잔류를 표명했다.[11]

2017년 캠프 중에 오른쪽 허벅지 안쪽을 부상당해 완치까지 약 3주가 걸려 개막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4월에 1군으로 승격했지만, 3경기에 등판한 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3개월 가까이 2군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개인 최소 등판 기록을 세웠지만, 7월 27일에 1군에 재승격한 후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10월 9일에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99번째이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구단의 토종 선수로는 처음으로 5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12] 구단은 아오야마를 자유 계약 선수로 풀어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구단 이사 부회장이었던 호시노 센이치의 조언으로 잔류하게 되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 감액 제한(25%)을 크게 넘는 67% 감액(6000만 엔 → 2000만 엔)으로 계약했다.[13]

2018년 1월에 오키나와에서 자율 훈련을 떠나기 전날, 축발인 오른쪽 발목의 인대를 손상. 그러나 자신이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에 치료는 하지 않고 주변에 숨긴 채 자율 훈련과 캠프를 강행했다[14]。시즌에서는 개막 1군은 놓쳤지만 4월 25일에 1군 승격. 당초에는 비하인드나 큰 점수 차에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승리 패턴인 마쓰이 유키나 후쿠야마 히로유키 등이 부진했기 때문에 5월 말부터 셋업맨으로 정착. 52경기에 등판하여 방어율 1.85로, 8년 만에 1점대를 기록. 팀 최다인 30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 또한, 득점권에서의 피안타율은 .098로, 퍼시픽 리그의 30이닝 이상 투구자 중 유일하게 0할대를 기록했다[15]

2019년 1군에 풀 시즌을 동행하면서, 경기 전개에 따른 다채로운 역할로 구원을 거듭한[16] 끝에, 1군 공식전으로는 개인 최다인 62경기에 등판했다. 6월 2일 대 소프트뱅크전(야후오쿠 돔)에서는, 2점 리드인 7회 1사 만루에서의 등판에서 우치카와 세이이치를 병살타로 처리함으로써, NPB 사상 6번째 공식전 통산 150홀드를 달성했다[17]。더욱이, 8월 14일에 라쿠텐 생명 파크에서 개최된 같은 경기에서, 구단 토종 투수로는 처음(NPB에서는 사상 41번째)으로 1군 공식전 통산 6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18]

2020년 춘계 캠프부터 레귤러 시즌 전반기까지 2군에서 조정 후, 9월 2일부터 1군에 합류했다.[19] 9월 4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라쿠텐 세이메이 파크 미야기)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어, 입단 1년 차부터 시작된 1군 공식전 시즌 승리 기록을 15년 연속으로 연장했다.[20] 이후 추가로 1승을 더 기록했지만, 1군 공식전 통산 등판 수는 개인 최소인 11경기에 그쳤다. 시즌 막바지인 11월 2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통보 직후에는 타 구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모색했지만,[21] 11월 21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22]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NPB에서 공시되었지만,[23] 12월 5일 구단 주최로 라쿠텐 세이메이 파크 미야기에서 열린 팬 감사제에서 은퇴 기념 행사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아오야마는 다음 2021년 이후에도 라쿠텐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긴지를 상대로 "라스트 피칭"을 선보였고, "야구 선수(로서의 생활은) 정말 즐거웠어!"라는 말로 은퇴 인사를 마무리했다.[24]

3. 1.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2005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아오야마를 3순위로 지명했다.[1]

2006년 3월 25일, 아오야마는 NPB 데뷔전을 치렀다. 신인으로서 시즌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하여 주로 중간 계투로서 활약했고 선발 투수가 빨리 강판된 경기에서는 롱릴리프도 맡았다. 교류전이 종료된 시점에서 팀내 1위가 되는 34경기에 등판했고 5월 3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점수가 리드된 상황에서 8회말 2아웃 상황에 등판해 4개의 공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9회에 라쿠텐이 역전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후에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8월 상순에 2군으로 떨어졌고 9월 하순에는 다시 1군에 합류하는 등 최종전에서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11월 1일, 센다이 시내의 병원에서 추계 캠프 연습 도중에 부상당했던 오른쪽 무릎 (반월판 손상) 수술을 받았다.

2007년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개막 2번째 경기인 세이부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1실점으로 막아 선발 첫 승리를 거두었다. 5월 7일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 일본 대표 1차 후보로 선출(최종 멤버에는 들지 못함)되었고, 5월 13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첫 완투, 첫 완봉,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9경기에서 1승 7패의 성적으로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7월 하순에는 2군으로 강등되었고, 9월 하순에 다시 1군에 합류했다.

2008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어, 3월 30일 닛폰햄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에 고야마 신이치로가 마무리로 기용되자, 중간 계투와 땜빵 선발을 모두 소화하는 스윙맨 역할을 담당했다.

2009년 부상으로 시즌 준비가 늦어졌고, 라쿠텐 구단 사상 처음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10월 3일 세이부전(K스타 미야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3개의 홈런을 맞았지만 9이닝 5실점으로 2년 만에 완투 승리를 거두었다[3]。또한 이 해 7월에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인 여성과 결혼했다.

2010년 3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왼쪽 옆구리 통증을 일으켜 2구 만에 강판되었다.[4] 선발 투수가 2구 만에 강판된 것은 구단의 최단 기록이다(선두 타자인 니시오카 츠요시와의 대결이 볼 1 스트라이크에서 완료되기 전에 강판되었기 때문에, 상대 타자 수는 0명). 복귀 후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어 셋업맨으로 정착, 가타야마 히로시, 고야마 신이치로와 함께 승리 공식 "쓰리 마운틴스[5]"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해에는 41경기에 등판하여, 개인 최다인 5승, 팀 최다 타이인 15홀드 포인트, 평균자책점 1.72의 성적을 남겼다.

2011년 개막 초에는 선발로, 개막 카드에서도 선발 등판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남기지 못한 채 중간 계투로 다시 돌아왔다. 2군 강등을 경험하는 등 작년 시즌 정도의 안정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51경기에 등판하여 3승 4패 2세이브, 팀내 1위인 26홀드 포인트와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2012년 1월 5일에 하코다테 시내 병원에서 첫째 아들(장남)이 태어났다.[6]。캠프에서는 다렐 라즈너로부터 수호신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고[7], 5월부터는 라즈너의 부상으로 인해 마무리 투수로 정착했다. 9일부터 15일까지 6경기 연속 세이브의 일본 타이기록을 달성, 첫 월간 MVP로도 선정되었다. 올스타전에도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했다. 그대로 시즌을 통해 마무리 투수를 맡아 팀 최다인 61경기에 등판. 2006년에 후쿠모리 카즈오가 기록한 21세이브를 넘어선 22세이브를 기록하며 구단 기록을 갱신했다[8]

2013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지만, 5월 후반부터 다렐 라즈너와 역할이 바뀌어 중간 계투로 기용되게 되었다. 이후 6월 12일부터 8월 3일까지 16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셋업맨으로 부활했다. 이 해에도 60경기에 등판하여, 2년 연속 60경기 등판과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 출전을 달성했다.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경기에서는, 함께 불펜을 지지하며 부상으로 안타깝게 중도 이탈한 라즈너의 유니폼을 입고 맥주를 뿌리는 행사에 참가했다.[9] 일본 시리즈에서는 부상으로 벤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프의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이 1억 엔이 되었다.

2014년 캠프에서는 수호신 경쟁에 참가했지만, 개막 1군에 들어가지 못했다. 승격 후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지만, 5월에 2군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셋업맨으로 후쿠야마 히로유키가 두각을 나타낸 점도 있어, 재승격한 6월 28일에는 본인 3년 만에 선발 등판을 경험하여 6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8월에 다시 2군으로 강등되었고, 최종 등판 수는 프로 데뷔 후 최소가 되었으며, 2007년 이후 세이브 수 0으로 마감했다.

2015년 수호신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클로저는 고졸 2년차인 마쓰이 유키로 고정되었다. 셋업맨으로 개막을 맞이했다. 개인 최다 타이인 61경기에 등판했고, WHIP도 처음으로 1을 넘지 않는 등 리그 2위 타이인 35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에 후쿠야마 히로유키가 기록한 27HP를 넘어 구단 신기록이 되었다. 또한, 6월 28일에는 통산 400경기 등판, 9월 14일에는 통산 100홀드를 각각 기록했고, 해외 FA권도 취득했다. 5살 위의 코야마 신이치로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함에 따라, 토종 투수 중에서는 최고령자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센다이 시내 병원에서 둘째 딸이 태어났다[10]

2016년, 주로 8회 셋업맨을 맡았다. 개막 3번째 경기인 3월 2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연장 10회에 등판하여 2/3이닝 5실점으로 무너져 패전 투수가 되었다. 다른 중간 계투 투수도 불안정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접전에서 기용되었지만, 6월 15,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2경기 연속으로 구원에 실패했다. 전반기는 5패, 방어율 6.39의 성적으로 전반기가 끝나면서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팜에서는 8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고, 8월 19일에 재승격되었다. 9월에는 등판한 13경기 모두 무실점으로 막는 등, 15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오프에 해외 FA권은 행사하지 않고, 라쿠텐에 잔류를 표명했다.[11]

2017년 캠프 중에 오른쪽 허벅지 안쪽을 부상당해 완치까지 약 3주가 걸려 개막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4월에 1군으로 승격했지만, 3경기에 등판한 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3개월 가까이 2군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개인 최소 등판 기록을 세웠지만, 7월 27일에 1군에 재승격한 후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10월 9일에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99번째이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구단의 토종 선수로는 처음으로 5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12] 구단은 아오야마를 자유 계약 선수로 풀어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구단 이사 부회장이었던 호시노 센이치의 조언으로 잔류하게 되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 감액 제한(25%)을 크게 넘는 67% 감액(6000만 엔 → 2000만 엔)으로 계약했다.[13]

2018년 1월에 오키나와에서 자율 훈련을 떠나기 전날, 축발인 오른쪽 발목의 인대를 손상. 그러나 자신이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에 치료는 하지 않고 주변에 숨긴 채 자율 훈련과 캠프를 강행했다[14]。시즌에서는 개막 1군은 놓쳤지만 4월 25일에 1군 승격. 당초에는 비하인드나 큰 점수 차에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승리 패턴인 마쓰이 유키나 후쿠야마 히로유키 등이 부진했기 때문에 5월 말부터 셋업맨으로 정착. 52경기에 등판하여 방어율 1.85로, 8년 만에 1점대를 기록. 팀 최다인 30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 또한, 득점권에서의 피안타율은 .098로, 퍼시픽 리그의 30이닝 이상 투구자 중 유일하게 0할대를 기록했다[15]

2019년 1군에 풀 시즌을 동행하면서, 경기 전개에 따른 다채로운 역할로 구원을 거듭한[16] 끝에, 1군 공식전으로는 개인 최다인 62경기에 등판했다. 6월 2일 대 소프트뱅크전(야후오쿠 돔)에서는, 2점 리드인 7회 1사 만루에서의 등판에서 우치카와 세이이치를 병살타로 처리함으로써, NPB 사상 6번째 공식전 통산 150홀드를 달성했다[17]。더욱이, 8월 14일에 라쿠텐 생명 파크에서 개최된 같은 경기에서, 구단 토종 투수로는 처음(NPB에서는 사상 41번째)으로 1군 공식전 통산 6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18]

2020년 춘계 캠프부터 레귤러 시즌 전반기까지 2군에서 조정 후, 9월 2일부터 1군에 합류했다.[19] 9월 4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라쿠텐 세이메이 파크 미야기)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어, 입단 1년 차부터 시작된 1군 공식전 시즌 승리 기록을 15년 연속으로 연장했다.[20] 이후 추가로 1승을 더 기록했지만, 1군 공식전 통산 등판 수는 개인 최소인 11경기에 그쳤다. 시즌 막바지인 11월 2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통보 직후에는 타 구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모색했지만,[21] 11월 21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22]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NPB에서 공시되었지만,[23] 12월 5일 구단 주최로 라쿠텐 세이메이 파크 미야기에서 열린 팬 감사제에서 은퇴 기념 행사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아오야마는 다음 2021년 이후에도 라쿠텐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긴지를 상대로 "라스트 피칭"을 선보였고, "야구 선수(로서의 생활은) 정말 즐거웠어!"라는 말로 은퇴 인사를 마무리했다.[24]

3. 1. 1. 2006년

신인으로서 시즌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하여 주로 중간 계투로서 활약했고 선발 투수가 빨리 강판된 경기에서는 롱릴리프도 맡았다. 교류전이 종료된 시점에서 팀내 1위가 되는 34경기에 등판했고 5월 3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점수가 리드된 상황에서 8회말 2아웃 상황에 등판해 4개의 공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9회에 라쿠텐이 역전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후에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8월 상순에 2군으로 떨어졌고 9월 하순에는 다시 1군에 합류하는 등 최종전에서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11월 1일, 센다이 시내의 병원에서 추계 캠프 연습 도중에 부상당했던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3. 1. 2. 2007년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개막 2번째 경기인 세이부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1실점으로 막아 선발 첫 승리를 거두었다. 5월 7일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 일본 대표 1차 후보로 선출(최종 멤버에는 들지 못함)되었고, 5월 13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첫 완투, 첫 완봉,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9경기에서 1승 7패의 성적으로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7월 하순에는 2군으로 강등되었고, 9월 하순에 다시 1군에 합류했다.

3. 1. 3. 2008년

2008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어, 3월 30일 닛폰햄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에 고야마 신이치로가 마무리로 기용되자, 중간 계투와 땜빵 선발을 모두 소화하는 스윙맨 역할을 담당했다.

3. 1. 4. 2009년

부상으로 시즌 준비가 늦어졌고, 라쿠텐 구단 사상 처음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10월 3일 세이부전(K스타 미야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3개의 홈런을 맞았지만 9이닝 5실점으로 2년 만에 완투 승리를 거두었다[3]。또한 이 해 7월에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인 여성과 결혼했다.

3. 1. 5. 2010년

2010년 3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왼쪽 옆구리 통증을 일으켜 2구 만에 강판되었다.[4] 선발 투수가 2구 만에 강판된 것은 구단의 최단 기록이다(선두 타자인 니시오카 츠요시와의 대결이 볼 1 스트라이크에서 완료되기 전에 강판되었기 때문에, 상대 타자 수는 0명). 복귀 후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어 셋업맨으로 정착, 가타야마 히로시, 고야마 신이치로와 함께 승리 공식 "쓰리 마운틴스[5]"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해에는 41경기에 등판하여, 개인 최다인 5승, 팀 최다 타이인 15홀드 포인트, 평균자책점 1.72의 성적을 남겼다.

3. 1. 6. 2011년

개막 초에는 선발로, 개막 카드에서도 선발 등판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남기지 못한 채 중간 계투로 다시 돌아왔다. 2군 강등을 경험하는 등 작년 시즌 정도의 안정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51경기에 등판하여 3승 4패 2세이브, 팀내 1위인 26홀드 포인트와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3. 1. 7. 2012년

2012년 1월 5일에 하코다테 시내 병원에서 첫째 아들(장남)이 태어났다.[6]。캠프에서는 다렐 라즈너로부터 수호신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고[7], 5월부터는 라즈너의 부상으로 인해 마무리 투수로 정착했다. 9일부터 15일까지 6경기 연속 세이브의 일본 타이기록을 달성, 첫 월간 MVP로도 선정되었다. 올스타전에도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했다. 그대로 시즌을 통해 마무리 투수를 맡아 팀 최다인 61경기에 등판. 2006년에 후쿠모리 카즈오가 기록한 21세이브를 넘어선 22세이브를 기록하며 구단 기록을 갱신했다[8]

3. 1. 8. 2013년

2013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지만, 5월 후반부터 다렐 라즈너와 역할이 바뀌어 중간 계투로 기용되게 되었다. 이후 6월 12일부터 8월 3일까지 16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셋업맨으로 부활했다. 이 해에도 60경기에 등판하여, 2년 연속 60경기 등판과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 출전을 달성했다.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경기에서는, 함께 불펜을 지지하며 부상으로 안타깝게 중도 이탈한 라즈너의 유니폼을 입고 맥주를 뿌리는 행사에 참가했다.[9] 일본 시리즈에서는 부상으로 벤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프의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이 1억 엔이 되었다.

3. 1. 9. 2014년

캠프에서는 수호신 경쟁에 참가했지만, 개막 1군에 들어가지 못했다. 승격 후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지만, 5월에 2군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셋업맨으로 후쿠야마 히로유키가 두각을 나타낸 점도 있어, 재승격한 6월 28일에는 본인 3년 만에 선발 등판을 경험하여 6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8월에 다시 2군으로 강등되었고, 최종 등판 수는 프로 데뷔 후 최소가 되었으며, 2007년 이후 세이브 수 0으로 마감했다.[1]

3. 1. 10. 2015년

수호신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클로저는 고졸 2년차인 마쓰이 유키로 고정되었다. 셋업맨으로 개막을 맞이했다. 개인 최다 타이인 61경기에 등판했고, WHIP도 처음으로 1을 넘지 않는 등 리그 2위 타이인 35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에 후쿠야마 히로유키가 기록한 27HP를 넘어 구단 신기록이 되었다. 또한, 6월 28일에는 통산 400경기 등판, 9월 14일에는 통산 100홀드를 각각 기록했고, 해외 FA권도 취득했다. 5살 위의 코야마 신이치로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함에 따라, 토종 투수 중에서는 최고령자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센다이 시내 병원에서 둘째 딸이 태어났다[10]

3. 1. 11. 2016년



2016년, 주로 8회 셋업맨을 맡았다. 개막 3번째 경기인 3월 2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연장 10회에 등판하여 2/3이닝 5실점으로 무너져 패전 투수가 되었다. 다른 중간 계투 투수도 불안정했기 때문에 이후에도 접전에서 기용되었지만, 6월 15,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2경기 연속으로 구원에 실패했다. 전반기는 5패, 방어율 6.39의 성적으로 전반기가 끝나면서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팜에서는 8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고, 8월 19일에 재승격되었다. 9월에는 등판한 13경기 모두 무실점으로 막는 등, 15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오프에 해외 FA권은 행사하지 않고, 라쿠텐에 잔류를 표명했다.[11]

3. 1. 12. 2017년

캠프 중에 오른쪽 허벅지 안쪽을 부상당해 완치까지 약 3주가 걸려 개막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4월에 1군으로 승격했지만, 3경기에 등판한 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3개월 가까이 2군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개인 최소 등판 기록을 세웠지만, 7월 27일에 1군에 재승격한 후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10월 9일에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99번째이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구단의 토종 선수로는 처음으로 5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12] 구단은 아오야마를 자유 계약 선수로 풀어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구단 이사 부회장이었던 호시노 센이치의 조언으로 잔류하게 되었다. 오프 시즌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 감액 제한(25%)을 크게 넘는 67% 감액(6000만 엔 → 2000만 엔)으로 계약했다.[13]

3. 1. 13. 2018년

2018년 1월에 오키나와에서 자율 훈련을 떠나기 전날, 축발인 오른쪽 발목의 인대를 손상. 그러나 자신이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에 치료는 하지 않고 주변에 숨긴 채 자율 훈련과 캠프를 강행했다[14]。시즌에서는 개막 1군은 놓쳤지만 4월 25일에 1군 승격. 당초에는 비하인드나 큰 점수 차에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승리 패턴인 마쓰이 유키나 후쿠야마 히로유키 등이 부진했기 때문에 5월 말부터 셋업맨으로 정착. 52경기에 등판하여 방어율 1.85로, 8년 만에 1점대를 기록. 팀 최다인 30홀드 포인트를 기록했다. 또한, 득점권에서의 피안타율은 .098로, 퍼시픽 리그의 30이닝 이상 투구자 중 유일하게 0할대를 기록했다[15]

3. 1. 14. 2019년

1군에 풀 시즌을 동행하면서, 경기 전개에 따른 다채로운 역할로 구원을 거듭한[16] 끝에, 1군 공식전으로는 개인 최다인 62경기에 등판했다. 6월 2일 대 소프트뱅크전(야후오쿠 돔)에서는, 2점 리드인 7회 1사 만루에서의 등판에서 우치카와 세이이치를 병살타로 처리함으로써, NPB 사상 6번째 공식전 통산 150홀드를 달성했다[17]。더욱이, 8월 14일에 라쿠텐 생명 파크에서 개최된 같은 경기에서, 구단 토종 투수로는 처음(NPB에서는 사상 41번째)으로 1군 공식전 통산 6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18]

3. 1. 15. 2020년

2020년 춘계 캠프부터 레귤러 시즌 전반기까지 2군에서 조정 후, 9월 2일부터 1군에 합류했다.[19] 9월 4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라쿠텐 세이메이 파크 미야기)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어, 입단 1년 차부터 시작된 1군 공식전 시즌 승리 기록을 15년 연속으로 연장했다.[20] 이후 추가로 1승을 더 기록했지만, 1군 공식전 통산 등판 수는 개인 최소인 11경기에 그쳤다. 시즌 막바지인 11월 2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통보 직후에는 타 구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모색했지만,[21] 11월 21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22]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NPB에서 공시되었지만,[23] 12월 5일 구단 주최로 라쿠텐 세이메이 파크 미야기에서 열린 팬 감사제에서 은퇴 기념 행사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아오야마는 다음 2021년 이후에도 라쿠텐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긴지를 상대로 "라스트 피칭"을 선보였고, "야구 선수(로서의 생활은) 정말 즐거웠어!"라는 말로 은퇴 인사를 마무리했다.[24]

4. 은퇴 후

2021년 이후에도 라쿠텐에 직원으로 잔류했다. 구단이 운영하는 라쿠텐 골든이글스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코치로 활동하는 한편, 센다이 지역 방송국인 도호쿠 방송(TBC 텔레비전·TBC 라디오)과 J SPORTS의 야구 해설자로도 활동했다.[24][25]

2023년 10월 31일, 2024년부터는 라쿠텐 1군 투수 코치를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26]

5. 선수로서의 특징

최고 구속 151km/h (평균 구속 약 143km/h)의 스트레이트[27]와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다. 현역 시절에는 슬라이더가 투구 총수의 4할 이상을 차지했다.[28] 포크볼, 슈트, 커브도 구사했다. 2012년까지는 컷 패스트볼체인지업을 드물게 섞어 던졌으나 이후 사용을 자제했고, 2018년부터 다시 던졌다. 투구 후 필딩 동작이 느려 1루로의 베이스 커버가 늦어 내야 안타를 허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시이 가즈히사는 아오야마의 은퇴에 즈음하여 "라쿠텐에서만 커리어를 마친 것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1군 공식전에서) 600경기 (등판)를 넘기는 투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릴리프 (전문의 투수)가 4년 정도밖에 실적을 계속 남길 수 없는 (NPB의) 가운데, 맞거나 막거나 하면서 매 경기 (처럼) 계속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하다", "직구(스트레이트)와 슬라이더가 생명선이었기 때문에 커리어를 길게 쌓을 수 있었다. '릴리프는 (승부구 종류를) 2개에 특화되어 있으면 (상대 타자를) 막고 실적을 만들 수 있다', '다양한 것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색을 갈고 닦아도 프로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팀의) 젊은 투수들은 이런 것을 배우길 바란다"는 찬사를 보냈다.[29]

라쿠텐 입단 후 1군 공식전 시즌 40경기 이상 등판을 10번, 50경기 이상 등판을 7번 기록했지만, 어깨나 팔꿈치의 큰 부상 없이 라쿠텐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현역 투수로서의 재적 연수(15년) · 1군 공식전 통산 등판 수(625) · 통산 홀드 수(159)는 모두 2020년 현역 은퇴 시점에서 라쿠텐 구단 기록이다.

6. 개인 생활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라이스이다.[31] 응원석에서는 SB 식품의 「카레의 왕자님」을 본뜬 「카레의 고지 님」이라는 응원 보드가 걸리기도 하며, 구장에서는 아오야마가 프로듀스한 카레가 판매되고 있다. 특기인 서예는 연필, 붓글씨 모두 7단을 취득했다.[30]

6. 1. 가족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라이스이다.[31] 응원석에서는 에스비 식품(SB 식품)의 「카레의 왕자님」을 본뜬 「카레의 고지 님」이라는 응원 보드가 걸리기도 하며, 구장에서는 아오야마가 프로듀스한 카레가 판매되고 있다. 특기인 서예는 연필, 붓글씨 모두 7단을 취득했다.[30]

6. 2. 취미 및 특기

서예는 연필, 붓글씨 모두 7단을 취득했다.[30]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라이스이다.[31] 응원석에서는 SB 식품의 「카레의 왕자님」을 본뜬 「카레의 고지 님」이라는 응원 보드가 걸리기도 하며, 구장에서는 아오야마가 프로듀스한 카레가 판매되고 있다.

6. 3.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라이스이다.[31] 응원석에서는 에스비 식품(SB 식품)의 「카레의 왕자님」을 본뜬 「카레의 고지 님」이라는 응원 보드가 걸리기도 하며, 구장에서는 아오야마가 프로듀스한 카레가 판매되고 있다.

7. 상세 정보

7. 1. 수상·타이틀 경력

7. 2. 개인 기록


  • 첫 등판 : 2006년 3월 25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차전(삿포로 돔), 7회말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2이닝 무실점[12]
  • 첫 탈삼진 : 상동, 7회말에 호세 마시야스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12]
  • 첫 홀드 : 2006년 4월 27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6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6회말 2사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1/3이닝 1실점[12]
  • 첫 선발 : 2006년 5월 7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7차전(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 4와 1/3이닝 4실점에서 패전 투수[12]
  • 첫 승리 : 2006년 5월 31일, 대 한신 타이거스 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8회말 2사에 4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1/3이닝 무실점[12]
  • 첫 선발 승리 : 2007년 3월 25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2차전(굿윌 돔), 6이닝 1실점[12]
  • 첫 완투 승리·첫 완봉 승리 : 2007년 5월 13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8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4피안타 무볼넷[12]
  • 첫 세이브 : 2008년 3월 30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8회초 1사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1과 2/3이닝 무실점[12]
  • 통산 100홀드 : 2015년 9월 14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3차전(코보스타 미야기), 8회초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21번째[12]
  • 500경기 등판: 2017년 10월 9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25차전 (Kobo 파크 미야기), 8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역대 99번째[12]
  • 150홀드: 2019년 6월 2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11차전 (후쿠오카 PayPay Dome), 7회초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2/3이닝 무실점 ※역대 6번째[32]
  • 600경기 등판: 2019년 8월 1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19차전 (라쿠텐 생명 파크 미야기), 7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역대 41번째[18]
  • 리그 최다 홀드 없이 통산 159홀드 ※역대 최다
  • 6경기 연속 세이브: 2012년 5월 9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6차전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 같은 해 5월 1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차전 (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역대 4번째로 당시 최장 기록
  • 올스타전 출장: 2회 (2012년, 2013년)

7. 3. 기타 기록

아오야마 고지는 6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2년 5월 9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6차전(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부터 같은 해 5월 1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까지의 6경기로, 일본 기록 타이며 역대 4번째 기록이다.[33] 또한, 올스타전에 2회(2012년, 2013년) 출장했다. 리그 최다 홀드 없이 통산 159홀드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아오야마 고지의 첫 등판은 2006년 3월 25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1차전 (삿포로 돔)이었다.[12] 첫 탈삼진, 첫 홀드, 첫 선발, 첫 승리, 첫 선발 승리, 첫 완투 승리·첫 완봉 승리, 첫 세이브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5년 9월 14일에는 100홀드,[32] 2017년 10월 9일에는 500경기 등판,[12] 2019년 6월 2일에는 150홀드,[32] 2019년 8월 14일에는 600경기 등판[18] 기록을 달성했다.

7. 4. 등번호


  • '''41'''(2006년 ~ 2020년)
  • '''81'''(2024년 ~ )

참조

[1] 웹사이트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選択選手一覧 https://draft.npb.jp[...] 2021-01-09
[2] 웹사이트 青山 浩二選手 現役引退に関して https://www.rakutene[...] 2021-01-09
[3] 뉴스 青山143球!完投で3勝目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3-11-05
[4] 뉴스 初回緊急リリーフ!長谷部が初勝利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3-11-05
[5] 웹사이트 楽天球団創設時を知る唯一の投手。リリーフ専門、闘将が絶大な信頼を寄せた小山伸一郎 https://www.baseball[...] ベースボールチャンネル 2019-10-18
[6] 웹사이트 青山浩二選手 第一子(長男)誕生のお知らせ https://www.rakutene[...] 2019-09-14
[7] 뉴스 楽天青山抑え宣言、ラズナーから奪いたい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2-09-15
[8] 뉴스 楽天 勝率5割復帰!牧田先制2ラン 青山球団新22S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2-10-08
[9] 뉴스 右肘手術で帰国 ラズナーのユニ青山が着込んだ https://www.sponichi[...] 2018-07-30
[10] 웹사이트 青山浩二選手に第二子(長女)誕生 https://www.rakutene[...] 2019-09-14
[11] 뉴스 「楽天イーグルスが好き」青山残留表明 聖沢に続いた https://www.sponichi[...] 2016-11-10
[12] 뉴스 楽天青山、12年目で生え抜き初の500試合登板 https://www.nikkansp[...] 2018-07-30
[13] 뉴스 【楽天】青山、減額制限超え67%減…来季は「中継ぎ陣に割って入る」 https://hochi.news/a[...] 2018-07-30
[14] 뉴스 <E番ノート・球譜>最古参青山、復活の年 逆境越え堂々の成績 https://www.kahoku.c[...] 河北新報 2018-10-22
[15] 뉴스 見逃し&空振り奪三振王は…パの“表彰されない部門ランキング”【投手・守備編】 https://full-count.j[...] Full-count 2019-11-21
[16] 뉴스 600試合登板、楽天・青山を救った星野仙一の「稼ぎたくないんかい!」。 https://number.bunsh[...] Number Web 2019-11-21
[17] 웹사이트 楽天青山150ホールド、1死満塁で内川を併殺斬り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0-09-04
[18] 웹사이트 楽天青山、生え抜き初600試合達成に平石監督敬意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9-09-14
[19] 웹사이트 楽天青山浩二投手と石原彪捕手が今季初の一軍昇格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0-09-04
[20] 웹사이트 【楽天】鉄腕・青山浩二が今季初白星で、球団創設2年目から15年連続勝利の偉業「今日は勝たせてもらいました」 https://hochi.news/a[...] 스포츠報知 2020-09-04
[21] 뉴스 青山が戦力外通告…楽天一筋15年、37歳現役続行へ https://www.sanspo.c[...] 2020-11-03
[22] 웹사이트 青山浩二は永久に不滅、優しさの化身/引退惜しむ声 - プロ野球 : 日刊スポーツ https://www.nikkansp[...] 2021-01-16
[23] 문서 2020年度自由契約選手 https://npb.jp/annou[...]
[24] 뉴스 楽天・青山 引退セレモニーで絶叫「楽しかった!」今後は球団アカデミーコーチ就任へ https://www.sponichi[...] 2020-11-03
[25] 문서 東京新聞2021年3月9日元楽天投手の青山浩二さん指導者に
[26] 웹사이트 楽天が青山浩二氏の一軍投手コーチ就任を発表! 楽天一筋15年の名リリーフが3年の時を経て現場に復帰 https://baseballking[...] 2023-11-13
[27] 서적 2012プロ野球オール写真選手名鑑 日本スポーツ企画出版社
[28] 뉴스 <楽天Eデータ>チーム支えるベテラン右腕/青山スライダーに自信 https://www.kahoku.c[...] 2019-11-21
[29] 뉴스 楽天石井監督「立派な数字」引退の青山をねぎらう https://www.nikkansp[...] 2020-11-23
[30] 웹사이트 楽天・青山浩二投手「習字は毛筆、硬筆ともに7段です」/プチ自慢 https://column.sp.ba[...] 2019-10-07
[31] 웹사이트 楽天・青山浩二投手「中辛と甘口を混ぜたような感じのカレーが好き」/おふくろの味 https://column.sp.ba[...] 2019-10-07
[32] 뉴스 青山が戦力外通告…楽天一筋15年、37歳現役続行へ https://www.sanspo.c[...] 2023-11-13
[33] 웹사이트 ホークス森、NPB記録の7試合7連続セーブ 8日間7セーブの大車輪で獅子追撃 https://full-count.j[...] 2023-11-13
[34] 문서 니시오카 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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